규미 개인전
6월 13일 - 7월 10일
숨-쉬고, 숨/쉬는 곳에서—그곳이 아름다울 때
어떤 공간이 아름답다고 할 때,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어디에 놓일까—당연히 그곳에, 즉 공간에 놓이겠지만. 거기에 있는 자연물을 보고, 주인이 갖다놓은 장식품을 보고, 혹은 이 둘을, 이 둘뿐만 아니라 전반을 아우른 분위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아름다운지 판단할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눈에 보일 수 있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 아우른다. 그런데 아름다운 공간과 있기 편한 공간은 다르다. 설령 그곳에 습도나 온도가 나와 맞고 장식물도 보기 좋은, 그런 곳이라 해도 말이다. 아름다운 공간의 출발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먼저 약속하지 않는다. 그곳은 나에게서 거리를 둔 위치에서 가까이 다가가 발생과 쇠퇴가 반복하는 장에서 시작한다. 불꽃놀이나 저 멀리 은하계의 반짝거림은 그곳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빛난다. 그 장면이나 대상의 덧없음뿐만 아니라 계속 보고 싶어 하거나 그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눈길을 보낼 때 우리의 민첩함이 곧 발생과 쇠퇴의 반복이다. 나와 장소/장면이 맺는 발생과 쇠퇴의 관계가 반복하면서 집이나 거실 같이 내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공간도 아름다운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상반된 이 관계를 통해서 아름다운 공간은 세워진다—그리고 다시 흩어진다.
우리와 장소/장면이 흩어져 있다가 응집되고, 다시 흩어지길 반복하는 곳, 이 아름다운 곳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부와 전체가 서로 호흡하듯이 출발한다. 규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빛, 조각들(fragments)은 작가의 시선과 캔버스 둘 다 세계로 세워놓는다. 작가의 시선은 눈앞에 실제로 있는 직접적인 대상, 실제와 다른 이미지를 실현하는 상상, 그리고 물질적으로 존재하고 무언가가 그려지고 그려진 캔버스를 향하고 이곳에서 어우러진다. 작가 노트에서 언급되고 실제로 작품 제목에 들어가기도 하는 ‘손바닥’이나 ‘별자리’는 크기와 규모가 상반되는 대상이다. 언뜻 보기에 상반된 소재가 그의 작업을 아울러서 다뤄지는 이유가 있다면, 그 크기와 규모에 상관없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로써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머무름의 출발지는 따스함과 편안함이 앞서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그곳과 함께 숨을 쉬고 맥박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 공간 안에 (살아)있는 경험을 “휴식”이라는 말로 표현했지만1, 사실 거기에는 한숨을 돌리는 것과 한글 표현 그대로 ‘숨을 쉬는 것’, 즉 숨결이 있다. 또한 바슐라르가 책에서 공간이 나를 지배한다고 할 때, 내가 그 장소에서 어떤 강요를 받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장악(掌握)—한자 표현 그대로 내 손안에 쥐는 (현실이나 실제와 다른) 감각이다. 큰 우주도 손바닥만 한 작은 세계도, 내가 그 공간을 감각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서 편안함을 얻을 때, 비시각적이거나 시각적인 감각, 실제로 본 것과 보지 못했지만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은 역동적으로 함께 호흡하고 머무른다.
작은 알갱이가 하나 씩, 차곡차곡 분해되고 쌓여간다. 이 과정이 우리—말하자면 장소/장면과 사람에 의해 서로 분해되고 쌓여가면서 어우러질 때, ‘저 멀리’는 ‘이토록 가까이’로 근접된다. 잠시 운동을 멈추는 것과 호흡이 동시에 일어나는 ‘숨쉬기(숨-쉬기, 숨/쉬기)’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가 화면에 옮기고 또 실현하는, 현실과 상상을 아우른 충돌을 목격한다. 그 세계에 빠져들면서도 그 감각을 화면에 기록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로 창작자와 보는 사람이 “숨쉬는” 과정이다. “자신을 [열망에] 몰입시키고 [잃어가면서] 떠날 때, 거기에 또다시 저 불가사의하면서도 사나운 생명이 오히려 격렬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한다.”2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소설 「꽃이 만발한 숲」에서 한 주인공이 열대와 바다를 꿈꾼다. 그때, 주인공에게 바다와 열대는 멀리서 가까이, 둘러싼다. 그곳—작품 속 장면, 그리고 작품에서우리는 함께 아름다움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함께 있음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규미가 그린 작거나 큰 세계를 볼 때 또한 그렇다. 작가의 시선에 동화하면서, 거기에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함께 숨을 쉬고 있음을 느낀다—은하계 속에서 하나의 빛을 움켜쥐듯이, 울창한 숲속에서 아른거리는 하나의 장면에 넋을 놓듯이, 잠시 빛나는 것들을 내 시선이 보내고 그곳을 점유하고 싶은 마음에 손을 뻗는 듯. 하지만 그 점유는 그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거나 도달된 장소를 패배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아름다운 공간이란 미세한 것과 거대한 것의 역동성을 거쳐 사람과 대상이 함께 ‘숨을 쉬는’ 곳이다.
1 ガストン・バシュラール, 岩村行雄訳, 『空間の詩学』, 筑摩書房, 2002, p. 264-265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일역본) 2 三島由紀夫, 『花ざかりの森・憂国』, 新潮社, 1968, p. 48 (미시마 유키오, 「꽃이 만발한 숲), 일역본)
서문 | 콘노 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