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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김지용 개인전

4월 18일 - 5월 13일

“메리 크리스마스”—우리와 우리가 아닌, 그러나 우리와 가까운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인사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그다음 날 이후부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잔상이 지배한다. 크리스마스 전야, 화려하게 장식한 방안에서 춤을 추고 다음 날, 이제 크리스마스 당일이 된 아침, 꿈과도 같이 몰래 선물을 받는 것—여기까지 한 쌍으로 묶인 기억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잔상은 시간적 경과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한 해의 특별한 그날과 다음 날, 그리고 다음 날에 걸쳐 이미 아로새겨져 있다. 어두운 밤에 불빛이 곳곳에 켜지고, 밤과 아침을 오가고, 내가 못 본 사이에 누군가가 나를 보고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그날(과 다음날), 이 과정을 담은 시간성 자체가 잔상이다. 잔상은 어떤 행동이나 실제 있었던 사건의 기록이나 그 기록의 지속과 엄연히 다르다.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사이—신, 산타, 예수님의 탄생과 나의 관계, 그리고 먼 훗날 떠올리면서 “내가 저렇게 기뻐했다고?”라는 물음에 “어렸을 땐 누구나 순진해서 그래”라고 (누군가와, 혹은 스스로 주고받으며) 대답하는 관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이다.

아마도, 김지용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 제목과 표현에서 무대가 강조되는 이유가 있다면, 작가가 잔상이 자리하는 곳으로 무대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무대란 현실의 구성원이 만들어낸 허구에 시각적으로 우리가 현실에 있으면서 서로 가까이 닿는 곳이다. 그간 필름 사진을 보고 초상을 그려온 작가가 귀여운 토끼 모습을 그린 것을 보고 혹자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릴 때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회화로 돌아왔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표현을 보았을 때, 출품작을 보고 쉽사리 이런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오히려 작가가 필름 사진에서 본 기억과 기억하지 못한 것, 그릴 수 있는 것과 그려낼 수밖에 없는 것의 관계성을 크리스마스라는 특정한 날/나날을 연결시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잔상이라는 특정한 시간성을 이미 가졌다. 필름 사진을 지금 볼 때 오는 시차(視差/時差)의 감각에서 출발한 회화 작업에서 작가는 더 밀고 나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과거의 현재 사이의 단절에서 오는, 말하자면 시간의 경과라는 거스를 수 없는 관계 맺기의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 허구를 서로 근접시키는 곳으로 무대를 가지고 온다.

현실과 허구의 근접하는 곳으로 무대가 설정된다. 작가는 의상을 입은 사람을 담기도(<무대와 아이들>), 인형들끼리 잘 노는 공간을 화면에 그리기도 한다(<무대무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여백이 남겨진 <무대가 끝나고>는 옛날 사진을 보고 느끼는 과거와 현재의 단절 대신 현실과 허구, 환영과 실제를 서로 근접시킨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우리가 고양하는 수직적 운동과 달리, 지상에서 우리가 보내는 크리스마스라는 특정한 날/나날은 곧 수평적으로 승화를 감각하는 무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제목처럼) 무대가 끝나는/끝난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무대가 끝나면 곧 다시 일상으로 우리는 돌아온다. 이 여백은 우리가 다시 그때 있던 현실로 보내주는 액자로써 지금 여기에 끼워진다. 그 무대라는 목적지에서—무대 위에서, 무대 앞에서, 그리고 서로 만나는 이곳에서, 우리는—그 위에 있거나, 그곳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우리는 과거를 의아해하는 대신 그때와 지금 사이에서 잠기는 잔상 속에 있게/살게 된다. 잠긴다는 것—서로 대립하거나 만나지 않던 것끼리 스며들고 우리가 그속에 빠져드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의 흔적 중에서 이미지로 남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어렴풋하게 할 수밖에 없다면, 남은 흔적에서 이미지로 나아가 현실과 꿈을, 실제와 허구를 끌어안는/은 것, 그것이 잔상이다. 이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 그 무대에서 우리에게 경험은 선사된다. 선물로 주어진 경험은 허구이며 실제로 없었던 것으로써 (되)돌려(,)놓을 수 없다. 그만큼 양자—꿈과 현실이, 실제와 허구가, 연기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가까이 있다. 그곳이 곧 밝아진다고 해서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대해 작가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꺼내는 점은 <trees>에서 불빛 아닌, 마치 불에 탄 듯한 나무를 그린 표현을 보면 더욱 흥미로워진다. 더 넓게 퍼진 잔상은 개인과 사회의 교착 상태(膠着状態 deadlock)에 교착(交錯 mixture)을 들여다보게 한다.) 오히려 수수께끼와 신비로움을 남기고 떠난다—어디로? 잔상이 되어, 하지만 현실을 버리지 않은 채 여기로 온다. 그러고 나서 말을 꺼낸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와 우리가 아닌, 그러나 우리와 가까운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인사가 무대에 올려진다.

서문 | 콘노 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