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령아, 윤여진, 이수빈, 장세형 그룹전
7월 11일 - 8월 17일
별안간 넘어졌다. 손과 무릎을 다쳤다. 피부가 피부로부터 밀려났다. 강변의 조야한 길 위에서, 날벌레 떼를 피하 려다 발을 헛디뎠다. 초여름, 저녁 일곱 시 즈음. 사방에서 비릿한 물냄새가 났다. 작은 돌과 플라스틱이 깊은 상 처를 냈다. 쓰라리고 아팠다. 피와 진물을 걷어내기 위해 알콜 스왑(alcohol swab)으로 상처를 문질렀다. 알콜 스 왑은 알코올에 적셔진 차갑고 촉촉한 거즈다. 상처를 소독할 때 쓰지만, 주변을 닦아내는 용도이며 상처에 직접 사용해서는 안된다. 쓰라린 고통이 스왑의 궤적을 따라 번졌다. 이튿날, 붙여 두었던 폼 형태의 밴드를 갈아주었다. 귀퉁이부터 들어올리자 환부가 딸려 올라오면서 통렬한 아픔 이 들숨과 함께 지나갔다. 전날보다 점성이 높고 색이 진한 진물이 상처를 뒤덮고 있었다. 뒤늦게 배운 용법대로 알콜 스왑으로는 그 주변만 닦아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상처를 직접 소독하지 않았더니 되려 상처가 금방 마르고 진물도 잦아들었다. 환부의 면적이 줄었다. 상처 주변으로 빨갛게 부어올랐던 부분들이 푸른 멍으로 가라앉았다. 군데군데 새 살이 보였다. 자정작용 으로 뱉어낸 이물질들이 피부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일주일 후, 밴드를 완전히 제거했다. 미끈한 새살이 가장자 리에 엷은 주름을 띄고 돋아 있었다. 알코올은 특유의 휘발성으로 닿는 순간에 증발하며 일시의 청량함을 준다. 가벼운 제형이며 더께로 쌓이지 않는 다. 이수빈, 김령아, 윤여진, 장세형은 그것이 이미 익숙한 감각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피부도, 상처도 아닌 애매한 상태를 견디며. 때로는 많은 것에 거리를 두고, 나와 작업 사이에서 부유하는 주변부에 집중해본다. 닿으면 잠시 차가웠다 사라지는 휘발성에 기대어, 주변부를 만지며, 심부의 살은 알아서 차오르기를 기다린다. 이 시답지 않은, 상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작가 네 명이 모였다. 알코올로 상처 주변부를 닦는 행위를 작업 위에 덧입히고 각자의 처지를 교차하면서 휘발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아무튼 와닿는 이야기이다. 삶 이 그러하니까. 계절은 문턱을 지나 한여름이 되었고 상처가 아물기에는 최악의 날씨다. 어쩌겠는가, 어서 회복되 기를 바라는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다 사라질 것이다. 작업실 계약이 끝나가고,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역시 내 집이 아닌 곳으로 옮겨 다니며, 일과 일 사이를 전전하고, 피부와 상처 사이의 애매한 것을 위무하는. 닿는 순간에 휘발 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서문 | 이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