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 개인전
3월 27일 - 5월 4일
짧은 이미지: 박인의 회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에게 더 선명한 것은 맨눈으로 보는 장면보다 꿈의 여운일지도 모른다. 눈을 뜨자니 눈부시거나 아직 어둡고, 정신을 들자니 눈이 뻑뻑하고, 비몽사몽이다. 애써 잠을 깨울 순 있지만, 애써 주변을 보진 않는다. 조난과 표류 끝에 도달한 무인도가 아니면, 우리는 선명함을 굳이 현실에 찾지 않는다. 바꿔 말해, 그만큼 무인도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곳으로써 그려진다. 이곳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황량함에서 출발한다. 황량함, 그것은 낙원과 황무지의 공통 분모이다. 건조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이 섬을 덮지만, 이는 곧 아련함을 그려나가는 길이 된다. 일어났을 때 건조한 눈을 비비면서 반쯤 닳아버린 꿈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 우리 앞에 이미지는 그려진다.
박인의 회화 작업에서 이미지가 그려진다. 아련히, 어렴풋이, 흐르는 듯한 풍경이 물성이 또렷한 바탕에 그려진다. 재료의 물성이긴 하나, 작가가 그리는 풍경은 그 위에 투사되듯이 얹힌다. 회화 평면의 물성은 건조하고 황량한 땅처럼 있고, 이 위에 찰나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자연이나 사람이 있는 풍경이 잠시, 그 평면 위에 머문다. ‘순간적인’ 이미지라기에, 그것은 사실 희박하고 연약하다. 순간에 속도뿐만 아니라 힘과 무게가, 더 나아가 강한 의지가 실리는 데 반해, 그의 작업은 찰나의, 즉 짧은 생애주기 안에서만 보이는 이미지이다. 금방 사라져 갈, 닳아 버릴, 잊혀갈 이미지들은 원근법의 소실점을 통해서 평면을 겨냥하지도 못한다. 아득함은 소실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듯한 덧없음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다 평면의 굴곡이 점차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잔물결 위에 떠오른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이미지가 그 위에 비친다. 꿈의 여운은 꿈속에 있지 않고, 현실 위에 놓이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실은 꿈의 바깥이다. 현실 안에서 사람은 잠을 자고 꿈을 꾸지만, 꿈이 꿈으로써 생생한 곳은 바로 꿈이라는 곳에서 나온, 바깥에 있는 현실이다. 개인전 《바깥 풍경》에서 작품이 보여 주는 이미지는 그림 안에 들어오기 전에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마치 꿈이 그렇듯, 이미지들은 이 안에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바깥 풍경이라는 말에서 ‘바깥’이란 어떤 것 ‘이외의’ 것이나 어떤 것‘밖에’ 남지 않은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 둘 사이,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풍경이 자리하게 된다. 가장 내적이면서도 외적인, 순환 고리처럼 계속 바깥으로 멀어져 가다가도 다시 들어오는 이미지가 여기에 있다—우리는 이미지 속에 있다.
서문 | 콘노유키